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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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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료


차영순 “실과 섬유로 만든 추상”

관리자 2023-02-01 조회수 88

차영순

집필자: 신지영






1. 구술진행의 목표

구술자는 자수를 대학에서 전공한 섬유예술작가임. 실과 바늘, 섬유를 사용하는 자수나 섬유예술은 여성 작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전형적인 여성의 집안일이라는 인식이 있어 예술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이 구술에서 자수 등 섬유예술 여성 작가를 발굴하고 그 삶과 예술을 기록하고자 함.

 

 

2. 구술자의 생애사 요약

자수와 함께한 여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작가는 자수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여학교에서는 가정, 가사와 학교 특활시간이 있어 자연스럽게 전공하게 되었다. 특히 특활시간에 이대 자수과 출신의 기량 있는 자수과 선생님을 만나서 입상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대 자수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실과 바늘은 여성성과 긴밀한 연관을 지니기 때문에 여성들은 가정, 가사 과목이나 특활활동, 아니면 가정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친숙해진다. 작가도 여학교 특활활동을 통해서 본격적인 자수 활동을 하게 되고 상을 받게 되어 전공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이화여대 자수과에서는 밑그림을 받거나 도안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자수 보다는 밑그림부터 뎃상, 스케치하여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소묘를 교과목으로 도입하여 창작하는 현대 자수를 가르쳤다. 작가는 대학시절 이상범의 추경작품을 밑그림으로 병풍을 만들어 자수의 기량을 닦았다. 졸업작품은 추상작품을 하면서 현대 예술을 시도하였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유학시절

작가는 6남매의 다섯째딸이었는데 어머니가 집안을 주로 이끌어 가면서 작가의 성장의 지지대가 되었다.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였는데 유럽 유학 자체가 교회 공동체를 통한 어머니의 지인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의 정신적·물질적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본인도 신앙이 돈독하여 수녀가 되고 싶었고 교수생활을 하면서도 신학대학을 다녔다. 신앙은 구술자의 작품의 원천이자 예술 추진력의 바탕이었다. 중세의 수녀이면서 예술가, 작곡가, 신학자인 힐데가르드가 구술자의 롤모델이었다.

 

부모님의 종교적 배경도 도움이 되었다.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지인의 소개로 벨기에 유학을 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유학에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작가는 유럽 유학을 통해 타피스트리 등 보다 넓은 섬유예술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1차 인터뷰의 후반부는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구술이 이루어졌다. 여성들이 자수로 경제적 도움을 얻곤 하였는데 당시 혼사, 선물 등 여러 행사에서 자수가 쓰이고 있었고, 또 수예점이 있어 여성들이 자수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벌이는 보잘 것 없었으나,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의 침선이 수예점이나 섬유산업이 부흥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의 통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화여대 자수과 학생들은 가정환경이 유복하여 순수예술에 치중하였다.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대학에서는 교직을 이수할 수 있어 가사과 교사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여교사는 결혼에서 좋은 직업이었다. 자수과가 섬예과로 바뀌면서 미술교사로 취직하고 기업 등으로 진출할 수 있어 더 취업 조건이 좋아졌다.

 

자수에서 현대 추상으로

일주일 뒤의 2차 구술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압구정동 도산공원 근처의 갤러리에서 작가 초대전이 열렸고 구술은 전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작품은 한지와 실을 소재로 한 추상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독일 신문에도 소개된 작품은 한지를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 외견상으로는 추상작품 같지만 제작 방법은 자수를 응용한 것이었다. 한지를 씨실과 날실로 이용해서 텍스타일처럼 씨실과 날실이 만나 건축적인 공간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텍스타일이라는 고유의 섬유예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재료에 있어서도 목화솜이나 양털, 린넨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예술적으로 응용했는데 실과 바늘, 천이라는 섬유예술 본연의 기법과 재료에 기반을 두었다. 아크릴을 사용해도 아크릴판에 수를 놓듯 구멍을 뚫고 실을 꿰는 형식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자수를 응용한 현대 미술로, 구술자는 40여년간 실과 바늘, 텍스타일의 원칙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조형을 실험해왔다고 할 수 있다.

 

꽁빠뇽, 복합 문화공간을 통한 경제 실험

또한 차영순 작가는 예술과 공예의 접점에 있는 섬예 전공 미술가들이 생업과 예술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꽁빠뇽 사업을 시작하였다. 2015년 이대 후미진 골목에서 구술자는 학생들과 함께 꽁빠뇽을 열었다. 꽁빠뇽은 여성 작가들이 모여 같은 공간에서 제작, 전시, 판매까지 하는 삶의 터전이자 복합 예술 공간이다. 구청에서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성황리에 진행되어 골목이 북적거릴 정도로 성공하였으나 계속 지속되지는 못했다. 꽁빠뇽은 후배 여성작가들의 예술작업과 생업, 그리고 커뮤니티를 결합한 실험 공동체였다. 섬유예술이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작가로 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한데, 최근에는 공모전만 있던 과거와 달리 아트페어, 상업화랑,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가 통로가 되고 있어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시대 환경의 변화: 자수에서 섬유예술로

대학의 자수과는 ‘80년대에 섬유예술과로 바뀌어서 실과 바늘의 예술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당시 자수과에서는 순수예술 서양화와 같이 소묘, 정밀 모사 등의 과목을 도입하면서 순수미술 학과에서처럼 학생들이 직접 사물을 보고 스케치하는 데생능력과 기본기를 쌓도록 하였다. 또한 추상작업도 실험하면서 자수가 공예가 아니라 현대 예술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하였다. 차 작가는 졸업작품으로 추상작업을 하면서 자수의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반세기 가까이 실과 바늘 텍스타일을 고집하면서도 여러 방법을 실험하여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넓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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