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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료

이연숙, 근대화 시기 전문적 여성의 사회 활동과 정치 참여 과정

관리자 2022-04-05 조회수 32



근대화 시기 전문적 여성의 사회 활동과 정치 참여 과정//이연숙

19351211일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영한은 철도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오복이, 13녀 중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의 영향으로 강원도에서 화천에서도 서울로 이동한 후 거주했던 청량리에서도 철도공무원 관사에서 살았다. 박동이었기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을 배달했다. 15살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연숙을 비롯한 한국인에게 있어 거대한 이동의 외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부산으로 일주일에 걸쳐 피난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열차를 탈 수 있었던 계층은 한정적이었는데, 이때 아버지가 철도공무원이었던 지점은 피난에서의 우선 순위 및 부산 영도에 자리잡고 일자리를 구할 때도 결정적이었다. 아버지 동료가 추천하여 부산항만에 있는 사무실 청소일을 하다가 미국의 전화교환원 일을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체득한 영어 실력이 이후, 이연숙의 경력과 리더십에 있어 중요한 자원이자 국제 네트워크에서 주요하게 작동하였다.

 

 

피난지 부산에 서울의 많은 학교들이 천막학교를 열었을 때 서울의 무학여중 선생님의 추천으로 인해 수도여고로 편입하게 되었고,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국제전진전화국의 교환원 일을 하면서 가계를 도와 학업을 마쳤다. 부산에 피난왔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한 후 서울로 돌아와서는 미국 대사관에서 일을 하면서 부산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대학 때에는 과대표, 사범대학 학생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단대 학생회장의 순환제로 뽑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으며 이때 이화여대 창립 70주년 행사를 했다.

 

 

대학졸업후 1960년 중앙여고 영어교사로 7년간 근무했다. 우연한 기회로 KBS라디오의 재치문답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재치박사로 청취자들에게 각인되면서 TBS의 굿모닝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이후, KBS TV에서 방영한 외교사절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의 대담자로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6년에 미국 국무성이 초청으로 미국 방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68년 미국 공부원의 공보고문으로 이직하여 24년 동안 근무했다.

 

 

1960년대 한국지역사회교육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때 현대건설의 정주영 등을 비롯한 강원도 화천지역 기업인의 지원 및 육영수 여사의 관심과 지원이 이 운동을 진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시기 이연숙이 참여한 주요 단체는 한국여학사협회, 한국소비자연맹, 대한가족협회,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국제존타클럽, 국제티미스트 한국협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등이었다.

 

 

1994년 이연숙은 국제존타클럽회장으로서 협의체 조직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1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여협 회장으로서 제시하였던 조직의 활동 아젠다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 활성화와 지위향상이었으며, 여연과의 소통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또한 1995년 지방의회 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한 할당제도 중요하게 추진하였다. 19949월 지방의회 여성의성 20% 확보를 목표로 한 할당제 도입을 위한 여성연대가 결성되었으며, 이연숙회장과 여연이 미경 상임대표가 이 연대체의 공동대표였으며, 15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이 시기 여협의 국제활동도 활발했는데 특히 1995년 북경 제4차 유엔세계여성회의 참가 준비를 위해 NGO한국위원회를 꾸렸으며, 북경대회에 참가한 후, 10월에 북경여성대회 결과 보고회를 열었따. 매년 유엔여성지위위원회 및 국제여성단체협의회(ICW),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여성단체화의 교류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

 

 

1997년 김영삼 정부 시기 정무 제2장관으로서 입각하였다. 주어진 임기 6개월 동안 소외계층의 여성, 특히 농촌여성의 지위향상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중요한 문제로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여성부신설과 관련하여 여성부는 힘이 있어야하며 부처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점을 피력했다

 

 

장관재직 시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하여 향후 5년간에 걸쳐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해야 할 여성정책의 방향과 실천목표를 망라하여 제 1차 여성정책기본계획(1998-2002)를 확정하였으며, 현재 일반화된 부처 인센티브제도를 실천계획에 포함하였다. 200228일 여성계의 핵심 아젠다였던 비례대표 후보 30% 여성할당제가 포함된 정당법이 통과되었으며, 2000413일 총선을 앞두고 20002, 한나라당제16대 총선 특별위원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제 16대 국회(2000.5.30.~2004.5.29.)에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으로 이연숙은 국방위원회 및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특히 간호사관학교 폐지 등 여군 이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국군사관학교 폐지 문제는 20006월에 문제시되었는데 예산 절감을 이유로 구조조정하겠다는 안을 철폐하고자 애썼는데 존속의 이유를 안정적인 간호장교의 확보 및 폐교시 간호후보생 양성비가 사관생도 양성보다 더 많은 예산이 요한다는 점, 양질의 의무지원이 필요한 점 등을 근거로 삼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고 20016월 간호사관학교 존석으로 규정하는 국군간호사관학교설치법중개정법률안의 제안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 외에도 군대내 성추행문제, ROTC 여생 허용 및 정부 내 각종 위원회 여성위원 참여확대를 목표로 한 여성계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국회에서 제기했다.


                                                                                                                           * 녹취록 전문은 우측 상단 첨부파일에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